서상목 회장이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고 있다
Q | 회장 선거 당시 매일 매일 새로운 공약들을 발표했다. 직접 현장과 호흡하며 내놓은 공약이어서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얘기가 많았다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가 전환기에 있다. 사회복지도 예외가 아니다. 민간복지전달체계는 무너지고 있는데, 복지계는 위기상황인 줄 모르는 것 같다. 복지분야를 재건축해 새로운 복지생태계를 조성하겠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서상목 신임 회장의 의욕에 찬 일성이다. 서 회장은 현재의 사회복지분야, 특히 전달체계가 노후화되어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도 서 회장의 과녁에서 비켜나지 못한다. 지난해 11월 협의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협의회가 정체성의 위기, 소통의 위기, 신뢰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밝힌 서 회장으로서는 추락한 협의회의 위상을 끌어올려야 할 책무가 두 어깨에 놓여 있다. 그는 “협의회가 사회복지분야를 재건축하는데 중심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며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협의회장직에 취임한 것은 역사적인 짐”이라고 했다. ‘역사적인 짐’을 짊어진 서 회장을 만나봤다.
Q | 제32대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 취임을 축하한다. 포부가 남다를 것 같은데….
“보건사회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부처 명칭이 바뀌면서 1995년 선진사회복지 원년을 선포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사회복지서비스 분야가 많이 발전해 복지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 그렇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개선할게 많다. 복지재정은 꾸준히 늘었지만 압축 발전을 하다 보니 허술한 부분이 적지 않다. 허술하고 미흡한 부분을 뜯어 고쳐야 한다. 사회복지협의회도 마찬가지다. 65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며 꾸준히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적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사회복지전달체계에서 협의회 역할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보장급여법에 공공전달체계만 있고, 민간전달체계와 협의회 기능은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협의회가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다시 틀을 짜야 한다. 사회복지분야의 위기 극복은 리모델링으로는 안 되고 완전히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는 각오로 새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협의회가 그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Q | 현재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3대 위기, 즉 정체성의 위기, 소통의 위기, 신뢰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했다. 이렇게 진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복지전달체계에서 역할이 없다. 법적으로 협의회에 부여된 역할이 있는가. 추상적으로 민간복지를 대표하고 민관 간의 가교역할을 한다고 되어 있지만, 법에 명시된 것이 하나도 없다. 선거를 치르면서 전국의 사회복지현장을 구석구석 둘러봤다. 현장의 얘기는 협의회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당히 충격이었다. 복지현장에 도움이 안 되는 협의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존재론에 의문부호가 찍힌 조직이 제대로 설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Q | 어떻게 보면 3대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협의회가 바로 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것 같다. 위기 극복의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금 상태로 가면 협의회가 없어도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제는 심각하다. 미국도 협의회와 공동모금회 두 개 기관이 존재하다 모금회만 살아남았다. 남의 일이 아니다. 10년 후 협의회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협의회의 명운을 건 여정에 나서야 한다. 국민 전체를 아우르면서 사회복지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과거에는 하지 못한 새로운 역할을 감당해내야 하는 것이다. 최근 보건복지부 장·차관 등을 만나 협의회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자는데 의견일치를 봤다. 사실 협의회 위상이 흔들리면 복지부도 좋을 게 없다. 위상이 함께 흔들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협의회 위기는 복지부 위기이고, 더 나아가 사회복지계의 위기다. 협의회, 복지부, 그리고 복지계의 3각체계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위기 극복의 구체적 방법론은 앞으로 더 연구해야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만큼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이다.”
Q | 협의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당히 비판적인데….
“현재의 협의회 역할이 중요한데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니 당연하다. 그런 차원에서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할 일도 많고, 어깨도 무겁다.”
“국회의원 선거도 여러 번 치러봤지만 이번처럼 공약을 많이 한적이 없다. 공약에는 나의 복지철학이 녹아있다. 또 실천공약이다. 중요한 것은 협의회의 3대 위기인 정체성의 위기, 소통의 위기, 신뢰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나 나름대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뿐 아니라 사회보장기본법, 공동모금회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 협의회가 제구실을 해야 한다.”
Q | 회장 선거 당시 내세운 공약 중 시·군·구사회복지협의회 설치를 완성한다는 것이 눈에 띈다. 전직 회장들도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었는데….
“시·군·구사회복지협의회의 설치는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당장 1월부터 미설치된 시·군·구사회복지협의회 설립에 나서 올 상반기 내에 완료하도록 하겠다. 이렇게 서두르는 것은 지역사회보장협의회체에 민간 파트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협의회가 시·군·구까지는 되어 있어야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Q | 시·군·구사회복지협의회에 기대하는 역할과 기능은 무엇인가.
“지금은 지방화 시대다. 제일 중요한 곳이 시·군·구협의회, 다음이 시·도협의회, 마지막으로 중앙협의회다. 사회보장협의체에서 시·군·구협의회장이 민간위원장 역할을 해야 지역사회 곳곳에 전달체계가 뿌리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지역의 사회복지기관, 시설, 경로당까지 협의회가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중한 지역 자원을 활용하면 지역복지발전은 물론 민간전달체계가 원활히 작동될 수 있다. 협의회는 지역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민간차원의 프로젝트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Q | 프로젝트에는 돈과 인력, 두 가지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협의회는 둘 다 불충분한 실정이다. 복안은 있는가.
“협의회에 사회공헌정보센터가 있다. 그래서 선거 때 ‘사회복지정보마당’ 설치를 약속했다. 복지정보마당을 운영해 사회복지분야에서 수요자와 공급자 간 인적 및 물적 자원의 교류와 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하겠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이 있으면 이를 프로젝트화해서 정보마당에 올리는 거다. 그러면 이를 지자체, 지역협의회, 복지기관, 기업 등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하고 벤치마킹할 수 있다. 충남 홍성지역의 복지사업이 마음에 들면 서울 강남의 기업이나 개인도 기부가 가능하도록 하는 구조다. 정보마당을 통해 이를 연결시켜주면 현장에서 협의회의 역할에 회의를 갖지는 못할 것이다.”
Q |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협의회를 비롯한 민간사회복지계의 지상과제다. 2년 전부터 법 개정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선택과 집중이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사회복지협의회 위상확보가 제1순위가 돼야 한다. 여기에 사활을 걸 생각이다. 나머지는 시간을 갖고 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법 개정관련 토론회와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느낀 것은 복지계 사람들이 일의 우선순위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 없이 한꺼번에 모두 쏟아 붓고 있다. 영역싸움만 해서는 10년이 걸려도 안 된다. 아마 국회도 두 손을 들 것이다. ‘누구를 위한 법 개정이냐’는 말도 나올 수 있다. 이해 당사자들을 위한 법인가, 국민을 위한 법인가. 우선순위를 정해 복지부와 국회와 협의해 법 개정 작업을 진행하겠다.”
Q | 보건과 복지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보건분야에 비해 복지분야가 홀대받는 경향이 있는데….
“복지 쪽이 홀대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건은 복지의 한 분야다. 담당부처 약칭도 ‘복지부’ 아닌가. 다만, 처우에서 보건인력이 우위에 있다. 그런데 이도 복지계의 문제다. 내가 복지부 장관할 때인 22년 전 보다 지금 의과대학 정원이 오히려 약간 줄었다. 지방 의대 입학하기가 서울대 공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울 정도로 의과대학의 문이 좁다. 반면 사회복지사들은 어떤가. 대학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서도 자격증을 쉽게 딸 수 있다. 요양보호사는 수십만명이 양산됐다. 복지부의 책임도 있지만, 사회복지계가 단합해서 반대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아마 의사 정원을 무작정 늘렸으면 의료계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처우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달라진다. 동네 치킨집이 2,3개면 적정선인데 수십개가 난립하면 다 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선 사회복지사 공급을 줄이고 전문성을 높여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사협회가 앞장서고 사회복지협의회가 밀어주어야 한다.”
Q | 그래도 사회복지종사자의 처우개선은 꼭 필요한데….
“우스갯소리로 ‘사회복지사끼리 결혼하면 수급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경기복지재단 이사장을 할 때 경기도에서 30억원을 지원받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회복지공제회를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중앙에서도 공제회를 만들었는데, 법이 이상하게 만들어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지원을 못한다. 그렇다보니 경기도공제회도 앞으로는 경기도의 재정지원을 못 받게 됐다. 재정이 어려울 때는 정부가 지원을 못해도 지원 자체를 법으로 막은 것은 문제다. 이런 독소조항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정부가 과학기술인공제회에는 수천억원 가량 지원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 형편이 괜찮은 과학기술인에게도 지원해주는데 가장 열악한 사회복지종사자를 지원해주면 안 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사회복지계가 단결이 안돼서 그렇다. 단합이 안 되니 대외적으로 힘이 없는 것이다. 첫째도 단합, 둘째도 단합이다. 이기세를 몰아 종사자 처우개선을 위한 관련 법 개정에 나서겠다.”
Q | 회장께서는 복지부 장관과 3선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복지부나 국회와의 관계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많은 기대를 갖고 있다.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복지부를 방문해보니 장·차관, 고위 간부들이 나름대로 예우하려고 애쓰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이것으론 안 된다. 결국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비전과 논리가 있어야 한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선배’는 처음 만남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내용이 알차야 다음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Q | 내용에 충실해야 된다는 말씀 같은데….
“내용과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장관시절에도 새로운 일들을 많이 했다.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큰 테이블에 차관부터 사무관까지 쭉 앉혀 놓고 ‘이런 저런 일을 하려는데 여기서 한사람이라도 설득 못하면 안한다. 뭐가 문제인지 반대한다면 이유를 말하라’고 했다. 사무관에서 차관까지 설득한 후에 일을 진행했다.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설득을 통해 일을 진행한 것이다. 협의회도 마찬가지다. 담당자와 부서장 등을 설득 못시킨다면 제대로 일이 진행되겠는가.”
Q | 협의회는 정부와 사회복지 현장과의 가교를 위해 협의와 조정 역할을 자임하고 있지만 현장의 대변자 기능에는 소홀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회복지정보마당’이 중요하다. 그리고 현장을 지원할 수 있는 연구, 교육, 자문역할을 활성화하려고 한다. 연구를 위한 연구는 필요치 않다. 연구-교육-자문이 하나로 통합돼야 한다. 이를 통해 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다.”
Q | 국민의 사회복지 인식제고도 중요한데….
“사회복지를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 비리나 부조리 사건이 터지면 복지계 전체가 도매금으로 넘어가기 일쑤다. 사회복지법제론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법제론 내용 대부분이 규제, 규제, 규제더라. 종사자 대우는 쥐꼬리이면서 처벌조항은 공무원보다 세다. 이렇듯 복지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대상이 아니라 규제대상으로만 본다. 사회복지도 하나의 산업으로 봐야 된다. 따라서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복지가 정부 보조금만 받아서 하는 게 아니라 복지도 기업과 금융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복지를 ‘잘하는 사람’에게 지원이 더 많이 갈 수 있도록 말이다. 복지도 경쟁을 하면 좀 더 생산적이고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복지생태계를 만들고 싶다.”
Q | 현재 우리나라 사회복지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재정은 늘었지만 저부담 국가다. 전달체계도 흩어져 있어 효과적인 복지시스템이 아니다. 현재 저부담-저복지인데 부담을 안늘리더라도 효율을 높이면 저부담-중복지는 만들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저부담-저복지에서 저부담-중복지, 더 나아가 중부담-고복지까지 가면 좋을 것이다.”
Q |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사회복지의 미래상을 그려달라.
“‘경제적 복지’의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 꿈이다. 이를 위해 일자리가 최상의 복지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일자리 복지기반을 더욱 확고히 구축해야 한다. 이는 복지행정과 고용행정을 통합하여 운영하고, 전 국민에게 맞춤형 복지·고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국 단위의 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사회혁신이야말로 사회복지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혁신복지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사회복지활동을 금융의 원리로 지원하는 사회금융시장의 육성과 사회복지사업의 사회적 성과를 강조하는 사회성과채권제도 도입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경영기법을 사회복지부문에 적용하여 복지경영의 전통을 확고히 수립해야 한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사회적 성과측정을 새로운 평가기준으로 설정하고, 기존의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 전달체계를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Q | 조직의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꼽는다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애기애타(愛己愛他)’정신이다. 변화를 이끄는 변혁적 리더십, 더불어 같이 나누는 민주적 리더십, 뜻을 하나로 모으는 통합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Q | 정부와 국회, 사회복지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정부는 사회복지계를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육성·발전의 대상으로 봐야한다. 부정적인 시각에서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시각으로의 교정이 필요하다. 정치권은 생산적이고 지속가능한 복지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복지계는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지 찾아서 변신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협의회는 새로운 복지패러다임을 제시하며 필요한 프로그램을 내놓는 선도적 역할을 하고,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하나 되는’ 사회복지계를 만들어 가자.
서상목 회장 프로필
1974 미국 스탠퍼드 대학원 경제학 박사
1973∼1978 세계은행(IBRD)경제조사역
1978∼1988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부원장
1988∼2000 제13,14,15대 국회의원
1993∼1995 보건복지부 장관
2000∼2014 스탠퍼드 대학 교환교수, 명지대 교수, 인제대 석좌교수
2009∼2011 경기복지재단 이사장
현재 동아대 석좌교수
현재 도산기념사업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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