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뉴스

청소년부터 노년까지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횡사협 0 4,213 2017.02.02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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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민(20)씨. 조현진(13)양.

어려움을 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들이 있다. 편안한 보금자리로 행복과 희망을 얻었고, 막막하던 사업은 해외 진출의 꿈을 이루었다. 교육부터 취업, 사업 등 우리생활에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는 정책을 통해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한 이들을 만나본다.

혁신적인 통합서비스 고용복지플러스센터

고용복지플러스센터는 취업, 복지, 서민금융 등에 관한 서비스를 국민들이 쉽고 편리하게 한곳에서 원스톱으로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3.0 협업 모델이다. 2014년 1월 남양주센터 개소를 시작으로 꾸준히 확충됐고, 2017년 말까지 100곳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해외에서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공공서비스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누리집 workplus.go.kr 문의 (국번없이)1350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위기가정에 고용과 복지로 희망을 전해요”

부산북부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근무하는 안은희(42)씨는 몇 달 전 안타까운 사연의 주민을 만났다. 월세와 세금등이 체납된 상태에서 한 여성이 출산을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출산 당일 구속돼 병원비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인 위기가정이었다.


복지지원팀에서는 대상자 가구의 밀린 월세와 공과금, 병원비 및 주거 이동 문제에 대한 지원을 맡기로 하고 새일센터 및 일자리팀에서 취업지원을 하기로 했다. 생계를 위협받는 모자(母子)를 돕기 위해 많은 이들이 두 팔을 걷어부쳤다.

병원비 할인과 생필품 지원, 체납된 세금 및 월세 지원, 보금자리 지원, 아이돌봄 서비스 등의 도움과 적극적인 취업알선을 함께 진행했다. 그 결과 임신기간 동안의 경력단절을 딛고 아이 엄마가 영어강사로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위기가 닥친 가정에 고용복지 플러스센터 내 여러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힘을 합한 결과였다.

“취업을 축하하기 위해 새일센터에서 주방용품 등을 전달했어요. 너무 감동적이고 보람된 순간이었죠. 수많은 위기가구와 저소득층의 자립은 고용과 복지가 함께할 때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이곳에서 실감했지요. 고용복지플러스센터가 자리를 잡으면서 한곳에 모인 여러 기관의 실무자들과 업무 노하우를 공유하고, 지역사회 복지 자원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대상자들에게 빠르고 효과적으로 실질적인 도움을 전달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일,학습병행제

일·학습병행제는 스펙 문제로 고민하는 청년들과 구인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는 제도다. 채용을 희망하는 기업이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하는 15세이상의 대한민국 청년 중에서 선발해 채용한 다음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4년까지 체계적인 훈련을 실시한다. 청년은 학습근로자로서 채용돼 특성화고·전문대 등을 다니면서 동시에 현장훈련을 받을 수 있다. 과정을 마치면 해당 분야의 자격을 인정해준다. 누리집 http://www.bizhrd.net/ 문의 1644-8000

일·학습병행제(학습근로자)
“스펙은 無, 열정은 有! 배움의 기쁨 얻었죠”


윤영준(28) 씨는 또래들이 대학에 입학하던 때 가정 형편상 일찌감치 취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내세울 것 없는 스펙으로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일용직이나 서비스, 배달 업무등이었다. 그러던 2014년 4월 유양기술(주)에 입사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직장상사의 권유로 1년간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하게 되면서다.

“입사 후 맡게 된 가스안전관리 업무가 너무 생소했어요. 낯선 환경에 체계적인 지식도 없었죠. 일·학습병행제 덕분에 가스기사 필기시험도 통과하는 등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훈련 외에도 스스로 꾸준히 노력한 결과 직무 관련 자격증도 12개나 취득했다. 막연하던 삶에 어느덧 목표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좋은 성과는 다음 도전을 위한 동기부여가 됐다. 업무 수행에도 큰 발전이 있었다. 최근 나간 설비검사에서 저장탱크의 중대 결함을 발견했고, 현장에서 조치까지 완료하여 설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아무런 스펙이 없었지만 일·학습병행제를 통해 업무 능력이 향상됐고, 그로 인해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많은 이들이 저처럼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일·학습병행제(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참여자)
“장애 딛고 새로운 꿈 찾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같은 기술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안고 아버지의 모교인 기계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한 조정민(20)씨는 취업에 대한 걱정이 컸다. 한쪽 다리가 불편해 학교도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입학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듣게 됐다.

“열심히 하면 신체조건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도제교육에 참여하면 학교와 기업에서 배우면서 실제로 제게 일을 잘 수행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보여줄 수 있을뿐더러 능력 개발에 더 유리하겠다는 판단이었죠.”

조금이라도 빨리 회사에 나가 현장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담임선생님과 도제반 선생님을 찾아가 설득한 결과 2학년 때부터 도제교육에 참여할 수 있었다.

조 씨는 도제학교 참여를 통해 금형 분야에서 인정받는 엔지니어로 성장하고 싶다는 인생의 명확한 목표를 가질 수 있었다. 그는 “앞으로 제도가 더 확산되어 많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저마다 꿈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달라지는 자유학기제

중학교 1학년 1학기에서 2학년 1학기 중 한 학기를 선택해 운영했던 자유학기제가 앞으로는 일반학기와 연계해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중간·기말고사를 치르지 않고 토론과 실습 등의 체험활동으로 학생들의 꿈과 끼를 찾아주는 자유학기제는 2013년 도입 이후 획일적이던 교육시스템에 긍정적인 변화를 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누리집 http://www.ggoomggi.go.kr/ 문의 02-6222-6060

자유학기제(학생)
“꿈도 학업도 포기하지 않을래요”

서울 목운중학교 1학년 조현진(13) 양은 바이올린을 손에 잡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초등학교 때 교내 오케스트라 악장을 했던 조 양은 중학교에 가서도 음악을 계속하고 싶었다. 자유학기제가 그런 조 양의 꿈에 날개를 달아줬다.

“자유학기제 수업시간에 친구들과 같이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서로를 잘 알 수 있게 됐어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친구들과의 공통점도 빨리 발견할 수 있었어요.”

조 양은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앙상블 연주 모임을 만들었다. 공통의 관심사가 있으니 친구들과 금세 친해졌고, 좋아하는 음악활동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특히 양천구 자원봉사센터의 청소년 기획봉사 프로젝트 공모를 보고 신청해 지원대상으로 선정되었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장소 섭외와 프로그램 구성은 물론 부모님 설득하기와 봉사센터와의 상황 조율 등 쉽지 않은 과정을 친구들과 함께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요즘에는 재능기부 공연인 ‘찾아가는 클래식 미니콘서트’를 매주 열고 있다. 조 양은 “장래에 공연 기획자가 되고 싶다”면서 “우리나라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문화부 장관이 되고 싶다는 꿈도 갖게 됐다”며 포부를 드러냈다.

자유학기제(교사)
“생기 찾은 교실, 교육자의 보람 느낍니다”

학업에 지친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분명히 어제와 다른 오늘이었다. 생기가 도는 교실을 본 이종수(50) 경남 창덕중학교 교사는 안팎의 우려와 달리 새롭게 시작한 자유학기 활동의 주제선택 활동과 동아리 활동이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짱’으로 불리던 학생이 카누를 배우는 프로젝트 학습에 참여했을 때 자신이 잘하는 일로 칭찬을 들은 게 처음이라면서 눈을 반짝이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의외로 많은 교사들이 ‘시끄러워서 옆 반에 피해가 가는 건 아닐까?’, ‘아이들 진도가 뒤처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해보고 싶은 수업을 선뜻 시도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자유학기제가 시행되면서 일방적으로 전달만 하던 이전 수업보다 훨씬 즐겁게 가르칠 수 있게 됐다.

“자유학기제는 험한 땅에 새로운 길을 내는 것 같은 힘든 부분이 분명 있지만, 자유학기 동안 이루어지는 학생 참여·활동 중심 수업을 통해 생기 있고 적극적으로 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교사로서의 보람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자유학기제는 우리 교육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행복주택 입주대상 확대

청년 창업인·프리랜서·예술인등도 행복주택 입주가 허용된다. 그동안 행복주택 공급량이 넉넉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입주자격을 제한하고 있었는데 2016년 12월 5000여 가구, 2017년 2만여 가구 이상등 공급량이 대폭 증가함에 따라 행복주택 입주 대상이 확대됐다. 사회초년생이나 신혼부부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아니더라도 소득활동이나 예술활동을 하고 있다면 행복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 누리집 www.molit.go.kr/happyhouse 문의 1599-0001

행복주택 입주자(사회초년생)
“내 집 마련할 때까지 오랫동안 살고 싶습니

김우정(31) 씨는 고향이 부산이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위치한 직장에 취업해 2013년부터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게 됐다. 하지만 서울의 집값은 매우 비쌌다. 겨우겨우 전세 5000만 원짜리 집을 얻었지만 혼자 살기에도 좁은 데다 창문을 열어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덧 그에게 집이란 밤에 잠만 자는 공간이 되었다. 전세 계약 기간 만료가 가까워지던 어느 날,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붙어 있는 행복주택 입주자 모집광고를 보게 됐다.

“일단 새 건물이라 깨끗해서 좋고, 냉장고와 책장 등이 옵션으로 설치돼 있어 가구를 새로 구입할 필요가 없는 점이 특히 좋아요. 가장 중요한 건 임대료죠. 월세가 17만 원이에요.”

김 씨는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부모님 효도관광을 위한 적금통장을 만들 수 있었다. 늘 미뤄왔던 효도도 실천하고,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주거환경으로 인해 삶의 질도 높아졌다.

그가 행복주택에 산다는 소식을 듣고 직장 동료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어떻게 신청하는지, 입주자격은 어떻게 되는지 문의가 쇄도했다. 그는 “생각보다 조건이 까다롭지 않으니 신청해보라는 권유를 하고 있다”며 “여건이 된다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때까지 여기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행복주택 입주자(신혼부부)
“우리 부부에게도 보금자리가 생겼어요”

10여 년 전, 2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이주은(41·가명) 씨 부부는 작은 빌라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젊으니까 아끼면서 알콩달콩 살다 보면 자식 키우고 살림도 늘겠지 하는 핑크빛 꿈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집주인은 전세를 월세로 변경했고, 저축은커녕 한 달 한 달 빠듯한 살림살이가 계속됐다. 다른 집을 알아보러 다니던 이 씨는 어느 날 지인의 권유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찾았다. 기대감 없이 상담을 받았는데 다행히 국민임대주택 신혼부부 우선공급의 1순위 신청대상임을 알게 됐다.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접수 장소에 갔더니 줄이 엄청나게 길었어요. 우리가 당첨될 수 있을까, 회의적인 마음이었지요.”

기나긴 줄을 보고 나서야 국민임대가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경쟁률이 얼마나 높은지 알게 됐다. 얼마 후 LH에서 우편이 도착했다. 당첨이었다.

“반짝반짝 빛으로 가득한 거실, 넓은 주차장과 체육시설, 놀이터, 그리고 엘리베이터. 4층까지 아이를 안고 오르락내리락하던 제게 축복 같은 집이었어요. 신혼부부 전세 임대 덕분에 포기했던 둘째 아이를 계획할 수 있었어요.”

중소기업 위한 금융지원 확대

올해부터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중소기업에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중소기업 유동성 신속 금융지원 프로그램’이 새로 도입된다. 정부보증비율을 늘려 일시적으로 자금난에 처한 중소기업이 신규자금을 원활히 공급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중소기업이 은행에서 신규대출을 받을 때 신용보증기금등을 최대 10억 원까지 보증한다. 또한 일시적 유동성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에 채권회수 유예, 만기 연장, 정책기관보증 등을 종합 지원한다. 누리집 fine.fss.or.kr/fine/sme/sme.jsp 문의 02-3145-8606~9

중소기업 기술신용대출
“지식재산권 담보대출 덕분에 수출에 날개 달았어요”

우순(49) 씨는 ㈜에프티에스의 대표이사 겸 기술총괄책임자로서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특수 분야인 실탄 사격훈련장비, 시뮬레이션 사격훈련장비의 국산화 개발에 매진해오고 있었다. 지난 2014년 기회가 찾아와 특수전사령부(이천) 및 미군기지(평택) 사격훈련장비 납품계약(합계 180억 원 규모)을 수주하게 됐다. 이는 당시 연매출 38억 원의 4배가 넘는 규모였다.


공사에 필요한 원재료 구입비를 충당하려고 은행을 찾아다녔으나, 회사규모가 작고 큰 공사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부동산 담보나 추가 보증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던 차에 산업은행에서 지식재산권 담보대출을 권유받아 보유한 특허기술 평가를 통해 담보로 인정받고 신속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보유한 특허 5건을 담보로 최초 10억 원, 6개월 후 10억 원을 추가 지원받아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습니다. 덕분에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죠.”

2015년 매출액 101억 원을 넘으며 포스코대우와의 협력을 통해 인도네시아 수출이 가시화되는 등 ㈜에프티에스는 대테러용 훈련장비 전문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기술금융으로 우리의 기술력을 제대로 인정받고 사업에 필요한 자금도 받았어요. 우리 같은 중소·벤처기업에 반드시 필요한 혁신적인 금융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출연연 우수연구원 정년연장제도
“퇴직연령 지났지만 연구를 계속합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우수연구원인 정흥석(62) 씨는 핵주기공정개발부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해오다 퇴직을 앞두고 고민이 커졌다.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는 항구적이고 환경친화적인 미래 원자력 에너지 개발이 필요한데, 퇴직연령인 61세에 도달해 지속적인 연구를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 연구원에서 우수연구원 정년 연장제도를 도입한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젊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아닌지 망설이게 됐다.

하지만 연구를 손에서 놓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수십 년간 근무하던 직장에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연구 성과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신청했고, 우수연구원으로 선정돼 원하던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우수연구원 정년연장제도의 큰 장점은 젊은 연구원들에게 자긍심을 고취시킨다는 점입니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수십 년 이상 쌓아온 노하우를 체계화해 후배 연구원들에게 전수시킬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남성 육아휴직 확대

남성 육아휴직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만 8세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둔 근로자는 남녀 각각 최대 1년간(부부 합산최대 2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육아휴직 기간에는 통상임금의 40%(하한 50만 원, 상한 100만 원)를 매월 고용보험에서 지급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 상반기 남성 육아휴직자는 전년 대비 51.6% 증가했다.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기업들 또한 부부가 함께 육아를 할 수 있도록 남성 육아휴직 의무제를 시행하는 등 변화의 바람을 보이고 있다. 누리집 www.worklife.kr/website 문의 (국번없이)1350

남성 육아휴직
“엄마만큼 아빠의 육아도 소중해요”

“뭐라고? 네가 육아휴직을 하겠다고?”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민영창(37) 씨의 친구들은 육아휴직 신청서를 냈다는 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어떤 친구는 “여성들도 회사 눈치를 보게 되는데, 남성 육아휴직을 받아주는 회사가 얼마나 되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둘째를 낳고 육아에 전념하던 민 씨의 아내가 복직을 하게 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양가 부모님은 지방에 계셔서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육아휴직을 결정하기 전까지 걱정의 연속이었다. 가계수입 감소에 대한 우려보다 회사 분위기가 더 걱정이었다. 처음 육아휴직을 신청했을 때 회사에서는 대체할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다. 육아휴직 승인을 받기까지 대체인력 운영방안에 대한 회의가 여러번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민 씨는 6개월 동안 육아에 전념하며 다른 아빠들은 알지 못할 육아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네 살짜리 첫째, 7개월 된 둘째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면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아내가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인지도 알게 됐다. 또한 부부가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경우 첫 달에 통상임금 100%의 육아휴직급여를 지원받는 아빠의 달 지원제도가 가계에 큰 보탬이 됐다.

“육아는 정말 전쟁이에요(웃음). 하지만 아이들에게 아빠의 존재를 확실히 알려줄 수 있었고, 직장생활만 했다면 몰랐을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가족의 소중함을 더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죠. 앞으로도 많은 남성근로자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합니다. 아빠들이 육아의 소중함과 가치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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